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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불신의 그림자
파이썬 자동화 스크립트 덕분에 나는 팀 내에서 ‘일 잘하는 신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업무 능력이 빛을 발할수록 나를 둘러싼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그래서, 진짜라니까?”
탕비실 문을 열려다 멈칫했다. 안에서 내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최 주임님이 그러는데, 걔 눈을 딱 마주치면 순간적으로 뇌가 정지하는 것 같대. 그냥 멍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라던데?”
“에이, 설마. 그냥 최 주임이 요즘 스트레스 받아서 예민한 거 아니야?”
“아니야, 나도 느꼈어. 저번에 회의할 때 한결 씨랑 눈 마주쳤는데, 등골이 쭈뼛 서더라고. 사람 눈이 아니라… 무슨 CCTV 렌즈가 나를 분석하는 것 같았어. 기분 나쁜 소름이 돋더라니까.”
문고리를 잡은 손이 차갑게 식었다.
‘머릿속을 휘젓는다. CCTV 같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미지의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서려 있었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능력이, 그들에게는 영혼을 침범당하는 폭력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밤새워 코드를 짜고, 팀을 위해 데이터를 정리했던 노력들은 ‘기분 나쁜 눈빛’이라는 프레임 아래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괴물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세상 속에서는.
나는 인기척을 내지 않고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오는 내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오후 주간 회의 시간.
회의실 공기는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박성우 팀장이 프로젝트 이슈를 브리핑하고 있었지만, 팀원들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곤두서 있는 듯했다.
특히 내가 발언할 차례가 되자, 공기의 흐름이 뚝 끊겼다.
“이번 주 QA 리포트 공유드리겠습니다. 자동화 스크립트 적용 결과, 에러 검출률이 15% 상승했습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스크린을 가리키며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윤서아 대리는 모니터 속 엑셀 시트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고, 다른 선배들은 내 턱이나 넥타이 매듭, 혹은 허공의 먼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내 눈을 마주치면 돌이 되는 메두사를 대하듯, 필사적인 회피였다.
‘다들… 나를 피하고 있어.’
그 노골적인 침묵과 회피가 나를 질식하게 만들었다. 내가 설명하는 데이터와 성과는 완벽했지만, 그 성과를 전달하는 ‘나’라는 존재는 이 공간에서 철저히 지워지고 있었다. 나는 바이러스였다. 격리되어야 마땅한 위험인자.
“이상입니다.”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옆자리의 최 주임이 몸을 움찔하며 의자를 반대쪽으로 살짝 뺐다. 바퀴가 바닥을 긁는 드르륵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느껴졌다. 그의 옆모습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나를 경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모니터의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한 피부, 퀭한 눈.
‘내가 괴물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능력을 써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건 사실이다. 욱하는 마음에 최 주임에게 살의를 심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살아남고 싶었을 뿐인데. 약한 몸으로, 이 치열한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인데.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는 이제 정말로 노력하고 있는데. 능력이 아니라 실력으로, 진심으로 다가가려 하는데. 이미 씌워진 ‘불신’의 프레임은 내 진심을 왜곡하고, 내 노력을 기만으로 만들고 있었다.
띠링.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윤 대리였다.
[윤서아 대리] 한결 씨, 아까 발표 좋았어요. 근데 너무 긴장한 것 같아요. 표정이 굳어 있어서 다들 좀 어려워하는 것 같네요.
그녀 나름의 위로였겠지만, 그 말조차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긴장해서 굳은 게 아니라, 당신들이 나를 괴물 보듯 해서 얼어붙은 건데. 그녀조차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뼈아팠다.
나는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결심이 섰다.
‘다시는 능력을 쓰지 않겠어.’
단순히 안 쓰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내 눈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야 했다.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한다면, 그 두려움의 근원을 스스로 봉인하겠다.
나는 서랍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모니터 하단에 붙였다.
[FACT & LOGIC]
감정을 섞지 않는다.
눈을 맞추며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데이터(Fact)와 논리(Logic)로만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기분 나쁜 최면술사로 생각한다면, 차라리 감정 없는 기계가 되어주겠다. 감정을 거세하고, 오직 0과 1로만 이루어진 결과값만 내놓는 부품이 되겠다. 그게 서로에게 안전하다면.
“이한결 씨, 잠깐 나 좀 볼까?”
박 팀장이 나를 불렀다. 나는 안경을 다시 썼다. 도수 없는 안경알이 차가운 빛을 반사했다.
“네, 팀장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팀장에게 걸어가는 동안, 나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했다. 그의 눈을 보지 않았다.
이제부터 나는, 눈이 없는 사람이다.
그것이 이 차가운 불신의 그림자 속에서 내가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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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001: 내 눈을 보면 안 돼 - 제7화. 오해의 대가
제7화. 오해의 대가“이한결 씨, 지금 당장 보안팀으로 오세요.”내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보안팀장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나는 마른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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