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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점심시간의 갈등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유일한 해방구라지만, 신입 사원인 내게는 업무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한결 씨는 메뉴 뭐 먹을래요?”

“아,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회사 근처의 김치찌개 집. 개발 2팀 팀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나는 수저를 세팅하고 물을 따르며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박성우 팀장은 임원 회의 때문에 빠졌고, 윤서아 대리와 다른 선배들, 그리고 입사 3년 차인 최진호 주임이 함께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최 주임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야, 한결아. 너 어제 윤 대리님이 사고 친 거 수습해줬다며?”

최 주임이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평소에도 나를 ‘낙하산’이라 의심하며 은근히 긁어대던 사람이었다.

“아… 네. 제가 실수를 좀 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좋겠다, 넌. 윤 대리님이 원래 남 일에 신경 안 쓰는 스타일인데, 신입이라고 특별 대우해주나 봐?”

그의 말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윤 대리가 묵묵히 밥만 먹고 있자, 최 주임은 더 신이 난 듯 떠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운이 좋은 거야. 면접 때도 박 팀장님이 너 엄청 깠다면서? 근데 어떻게 붙었냐? 뭐 빽이라도 있어?”

숟가락을 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빽이라니.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부정할 수 없었다. 내 능력으로 면접관의 마음을 돌린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 합격을 위해 내가 밤새워 공부했던 데이터 분석과 코딩, 그 모든 노력마저 ‘운’과 ‘빽’이라는 단어 아래 짓밟히는 기분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상한 음식을 억지로 삼킨 것처럼.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운? 야, 여기 운으로 들어온 사람이 어디 있냐. 다들 죽어라 스펙 쌓아서 들어온 거지. 너처럼 비실비실한 애가 들어오니까 기존 사람들이 허탈한 거야.”

선이 넘었다. 주변 선배들이 “야, 진호야. 밥 먹는데 그만해라”라고 말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내 말이 틀려? 솔직히 쟤, 짐만 될 게 뻔하잖아. 어제도 데이터 날려 먹을 뻔했다며? 윤 대리님이 안 봐줬으면 넌 벌써 시말서야.”

최 주임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비웃었다.

“능력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밥맛 떨어지게.”

그 순간, 내 안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짐만 된다.’

평생을 따라다닌 꼬리표. 약한 심장 때문에 체육 시간에 벤치를 지킬 때도, 친구들이 축구를 할 때 창밖을 볼 때도 들었던 그 말.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비참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혈관을 타고 역류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최 주임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만해. 닥쳐. 제발 좀 닥치라고!’

이성이 개입할 틈도 없었다. 평소처럼 차갑고 정교하게 기억을 조작하는 과정 따위는 없었다. 내 눈동자 깊은 곳에서 뜨거운 용암 같은 것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제어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 덩어리였다. 내 시선이 최 주임의 눈동자에 꽂히는 순간, 보라색 잔상이 거칠게 일렁였다.

쾅!

최 주임이 갑자기 식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찌개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이 미친 새끼가!”

식당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 테이블로 쏠렸다. 최 주임의 얼굴은 공포와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죽여버린다고? 내 눈을 파버리겠다고?”

“…네?”

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조차 떼지 않았다. 하지만 최 주임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씩씩거렸다.

“다들 들었죠? 이 새끼가 저한테 쌍욕 하는 거! 와, 나 진짜 어이가 없네. 신입 주제에 선배한테 죽여버리겠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최 주임이 주변 동료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표정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진호야, 왜 그래? 한결 씨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맞아. 가만히 밥만 먹고 있었잖아. 너 갑자기 왜 그래?”

“뭐? 아니, 분명히 들었다니까! 내 귀에 대고 속삭였잖아! 눈을 부라리면서!”

최 주임은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듯 가슴을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혼자 허공에 대고 화를 내는 미친 사람 취급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 분노가, 내 살의가… 정제되지 않은 채 그에게 쏟아져 들어갔다는 것을. 그것은 ‘기억 조작’이 아니라, 내 내면의 비명을 상대의 뇌에 직접 꽂아 넣는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환청…?’

‘아….’

나는 고개를 숙였다. 최 주임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식당을 나가버렸다. 남겨진 자리에는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한결 씨, 괜찮아요? 진호가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봐요.”

윤 대리가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그녀는 나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 속에는 미세한 의구심이 서려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사람이 저렇게까지 반응할 수 있을까, 하는 본능적인 의심.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분위기가….”

“아니에요. 밥이나 마저 먹어요.”

나는 숟가락을 들었지만, 목구멍이 꽉 막혀 아무것도 넘길 수 없었다.

오후 업무 시간 내내 사무실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최 주임은 자리에 돌아와서도 나를 힐끔거리며 경계했다. 나를 보는 그의 눈에는 이제 경멸이 아니라 ‘공포’가 담겨 있었다.

나는 모니터 뒤에 숨어 떨리는 손을 감췄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척했지만, 손끝 감각이 없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저 신입, 뭔가 이상해. 눈빛이 기분 나빠. 가까이 가지 마.

숨이 막혀왔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 능력은 나를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주변을 파괴하고 나를 고립시키는 시한폭탄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피해 다닐 거야.’

최 주임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걸 보며 통쾌함보다는 죄책감이, 그리고 들킬지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눈을 보았다.
평범해 보이는 갈색 눈동자. 하지만 그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었던가.

이것이 내 능력이 불러온 첫 번째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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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001: 내 눈을 보면 안 돼 - 제4.5화. 틈새의 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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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댕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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