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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이후의 금 4화 – 포럼, 그리고 이후의 금

포럼이 열리는 컨벤션 센터는, 중앙은행 건물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 로비에는 이미 다양한 명찰을 단 사람들이 북적였다.

“우주 자원과 통화 체계의 미래”

대형 현수막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아래쪽에는 후원 기관으로 정부 부처, 연구기관, 민간 우주기업, 금융회사 로고들이 줄줄이 박혀 있었다.

민서는 출입 등록을 마치고, 이름표를 목에 걸었다.
“한국은행 자산운용국 / 민서”라는 글자가 하얀 플라스틱 위에 선명했다.

“야, 여기서 또 보네.”

뒤에서 등을 툭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진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주광부님, 오늘은 정장 입으셨네.”
민서가 웃었다.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라도 하시나요?”

“아니, 그냥 얼굴 좀 좋아 보이라고.”
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오니까, 우리 회사 이름도 있더라.”

그는 로비 한쪽, 스폰서 배너가 늘어선 곳을 가리켰다.
진우의 회사 로고가 몇 번째 줄에 적혀 있었다.

“금융기관, 우주기업, 정부 연구소… 다 모였네.”
민서가 중얼거렸다. “금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시대에,
그래도 아직은 이런 자리에서 희소한 ‘정보’를 나누고 있는 거겠지.”

포럼은 세션 두 개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 번째는 “우주 자원 개발이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
두 번째는 “우주 시대의 준비자산과 통화 질서”.

첫 번째 세션에서는 익숙한 내용들이 반복되었다.

“소행성 채굴을 통해 이론적으로는 엄청난 양의 귀금속과 희귀 원소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법적·경제적 허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실제 공급 충격은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주 자원은 지구로 가져와 파는 것보다,
우주에서 바로 사용하는 연료·부품·구조재로서의 가치가 더 클 것이다.”

말하자면,
“크게 걱정할 것도, 크게 기대할 것도 아직은 아니다”라는 내용이 공손한 표현으로 포장돼 있었다.

민서는 메모를 하다가, 진우 쪽을 힐끗 봤다.
진우는 팔짱을 낀 채, 발표 슬라이드보다 발표자의 표정을 더 유심히 보는 듯했다.

“표정이 왜 저래?”
민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 우리 회사 투자 설명회 때도 비슷한 말 했거든.”
진우가 속삭였다. “‘엄청난 잠재력, 아직은 긴 시간’ 이 레퍼토리.”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렇지.”
진우가 수긍했다. “그래서 더 문제야. 틀린 건 아닌데,
저 말만 계속 듣다 보면,
우린 평생 ‘잠재력’만 가진 채 늙어 갈 것 같거든.”

두 번째 세션은, 민서의 직업과 더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사회자가 질문을 던졌다.

“우주 시대가 본격화되고,
랩그로운 금과 소행성 금이 동시에 시장에 영향을 주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자산을 ‘신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패널로 나온 사람들은 각자 입장에 맞는 답을 냈다.

“여전히 국가 채권과 법정통화가 중심이 될 것이다.”
“에너지와 탄소배출권 같은 자원이 새로운 준비자산으로 부상할 것이다.”
“글로벌 테크 기업의 주식과 데이터 자산이 사실상의 준비자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탈중앙화된 디지털 자산이, 금의 역할 일부를 대체할 수 있다.”

금에 대해서는,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준비자산 내 비중은 줄어들 수 있다.”
“천연 금과 랩그로운 금을 어떻게 구분·관리할지가 관건이다.”

패널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준비자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끼리의 합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금이든, 채권이든, 데이터든.
우리가 ‘이건 다른 누구도 쉽게 만들 수 없다’고 믿고,
‘이건 쉽게 조작되지 않는다’고 믿고,
‘이건 오랜 시간 동안 가치가 유지될 것이다’라고 믿으면,
그게 준비자산이 되는 거죠.”

민서는 저절로 IMF 때, 2008년, 코로나 초기에 본 뉴스 화면들이 떠올랐다.
줄 서 있는 사람들, 문 닫힌 은행, 급락하는 주가지수 옆에서 꾸준히 올라가던 금선물 그래프.

‘그때 사람들은, 금이 많아서 산 게 아니었다.’
민서는 생각했다. ‘그냥… 뭔가 손에 쥐고 있을 게 필요했던 거지.’

포럼이 끝난 뒤,
둘은 건물 밖 작은 광장에서 다시 마주 섰다.

“어떠셨어요, 중앙은행 담당자님.”
진우가 물었다. “오늘 들은 이야기, 어제 회의에서 들은 이야기랑 많이 달랐어?”

“톤은 비슷했지.”
민서가 대답했다. “‘지켜보자’, ‘변화는 올 거다’, ‘당장은 아니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민서가 웃었다. “나도 알고 보면, 안전한 선 안에서만 고민하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좋았던 건…”
진우가 말을 이었다. “패널 중 한 명이 했던 말.”

“준비자산은 합의의 다른 이름이라는 거?”

“응.”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뭘 믿기로 하느냐의 문제.
그게 어쩌면,
금이 희소하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일지도 모르겠어.”

광장 한쪽, 낮은 난간 너머로 석양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해는 거의 다 지고, 붉은 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하늘이 도시 위를 덮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민서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제 카페에서 했던 이야기,
나 진짜로 써보려고.”

“어떤 거?”

“금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은 시대에 대한 보고서.”
그가 말했다. “물론 공식 보고서 말고,
나 혼자 보는 버전부터.”

진우의 눈이 조금 커졌다.

“글 쓰겠다고? 너?”

“나도 가끔은, 숫자 말고 문장도 써.”
민서가 웃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보는 금고, 네가 보는 소행성,
이 도시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들.
이게 어떻게 한 시대의 단면이 되는지,
한번 정리해 보고 싶어.”

“좋네.”
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나도 하나 쓸까.”

“우주공학자의 현장 기록?”

“응.”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소행성에서 금을 캐려고 갔다가,
결국 캐온 건 ‘금이라는 개념에 대한 질문’이었다는 내용.”

“나중에, 둘이 서로 바꿔 읽어볼까?”
민서가 제안했다.

“중앙은행 비밀문서 아니야?”
진우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비밀 부분은 빼고 쓰지.”
민서가 말했다. “대신 너도, 회사 기밀은 빼고 써.”

“그럼 결국,
우리 둘이 쓸 수 있는 건
‘숫자 사이의 공백’이겠네.”

“그래, 딱 그거.”
민서가 미소 지었다. “숫자와 숫자 사이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표정, 말투, 망설임, 욕심, 두려움 같은 것들.”

멀리서,
도심 빌딩 사이로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있잖아.”

민서가 말했다.

“금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게 되면,
사람들이 달을 더 많이 올려다보게 될까?”

진우는 그 질문을 한 번 되뇌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글쎄.”
그가 말했다. “달 속 금을 생각하면서 볼 수도 있고,
그냥 예쁜 거 떠 있네, 하면서 볼 수도 있고.”

“너는?”

“나는…”
진우가 잠시 생각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

“어떻게?”

“‘저기 어딘가에,
우리가 아직 가격 붙이지 못한 것들이 많겠지.’”

그 말에,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마 진짜 희소성일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 – 어느 날, 메일 하나

몇 주쯤 지난 어느 평일 아침,
민서는 평소처럼 출근해 메일함을 열었다.

각종 보고서, 회의 일정, 해외 중앙은행 뉴스 요약들이 쏟아져 들어와 있었고,
그 사이에 비교적 수수한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소행성 샘플 이미지 공유 – 참고용”

보낸 사람은 진우였다.
공식 기관 메일 주소로 온 걸 보니, 회사 측 승인을 받아 송부한 자료인 듯했다.

민서는 메일을 열어 첨부파일을 확인했다.

첫 번째 이미지는, 이전에 받았던 것과 비슷한 암석 샘플 사진.
하지만 두 번째 이미지는 조금 달랐다.

검은 암석 대신,
실험실 조명 아래에서 반짝이는 작은 금속 덩어리.
아직 금괴라고 부르긴 이른, 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의 조각이었다.

“우리가 소행성에서 처음으로 분리해 낸 금속 덩어리.
순도 분석은 더 해봐야 하지만,
어쨌든 이건 ‘지구 밖에서 시작된 금’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팀장이 그러더라.”

메일 본문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맨 아래에는 한 줄이 더 붙어 있었다.

“언젠가,
네가 말한 대로
천연 금, 랩그로운 금, 우주 금
세 종류를 한 줄에 놓을 날이 오겠지.”

민서는 모니터 화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프린트 버튼을 눌렀다.

프린터에서 뽑혀 나온 사진을 조심스럽게 반으로 접어,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그 옆에는, 예전에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종이 메모가 함께 들어 있었다.

What happens when gold is no longer scarce?

열지 않아도,
그 문장의 모양을 손끝이 기억하고 있었다.

서랍을 닫고 나서야,
민서는 모니터 속 숫자들로 다시 눈을 돌렸다.

금 시세 차트는 오늘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뉴스 헤드라인은 여전히 랩그로운 금과 전통 금광,
우주 자원과 탄소중립,
디지털 통화와 통화정책 사이를 오갔다.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많았다.

민서는 새 문서 창을 하나 열었다.

제목 줄에,
그는 조심스럽게 몇 글자를 입력했다.

「금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날」

커서가 깜빡였다.
그 아래에 첫 문장을 어떻게 쓸지 잠시 망설이던 그는,
어느새 떠오르는 한 문장을 그대로 적어 내려갔다.

“우리가 빛난다고 믿었던 것들은,
어쩌면 그 안에 든 금 때문이 아니라,
한동안 그걸 붙들고 버틴 우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야,
민서는 살짝 숨을 내쉬었다.

이건 중앙은행을 위한 보고서도,
시장 참가자를 위한 리포트도 아니었다.

그냥,
금고를 드나드는 한 사람과,
소행성 궤도를 계산하는 한 사람이
같은 시대를 살면서 나눈 생각의 기록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기록 하나하나가
금 이후의 시대에 남는
진짜 희소성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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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댕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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