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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눈의 기억

쿵. 쿵. 쿵.
심장이 멋대로 날뛰었다. 폐가 찢어질 것 같았다.

운동장 트랙을 반 바퀴도 채 돌지 못했는데, 목구멍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고, 내 거친 숨소리만이 고막을 때렸다.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 태어날 때부터 내 것이었던 이 지긋지긋한 고통.

“한결아, 무리하지 말고 빠져.”

체육 선생님의 목소리가 구원처럼 들렸다. 나는 무릎을 짚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남들보다 조금 작게 태어난 심장, 약한 호흡기. 내 몸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은 내게 약한 몸을 준 대신 감당하기 힘든 ‘눈’을 주었다. 그리고 그 눈은, 나의 고통을 먹고 자라났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고등학교 2학년, 유난히 덥고 습했던 여름날이었다.


교실 뒤편, 청소 도구함 옆은 사각지대였다. 점심시간의 소란스러움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내 앞에는 반에서 가장 덩치가 큰 태수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야, 이한결. 내 말이 안 들리냐?”

태수가 내 멱살을 거칠게 잡아챘다. 힘없는 몸이 종이인형처럼 벽에 처박혔다. 컥, 하고 숨이 막혔다. 녀석은 내가 체육 시간에 열외 되는 것을 핑계 삼아, 며칠 전부터 끈질기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

“대답을 해, 벙어리 새끼야. 아까 체육 시간에 쌤한테 뭐라고 꼰질렀냐고.”

“아무 말도 안 했어.”

“거짓말하지 마. 네가 나 쳐다보면서 쑥덕거리는 거 다 봤는데.”

태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억지였다. 나는 그저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태수 같은 부류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할 뿐.

태수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곧 뺨이나 머리통으로 날아올 궤적이었다. 맞으면 아플 것이다. 어쩌면 코피가 터지고, 며칠은 욱신거리겠지. 그 고통이 상상되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 순간, 육체적 고통에 대한 공포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대신, 고개를 들어 녀석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내 눈동자 깊은 곳에서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시신경을 타고 흘러나와, 허공을 가르고 태수의 눈동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강렬하게 외쳤다.

‘내가 욕을 한 게 아니야. 욕을 한 건 너야. 너는 지금 나한테 끔찍한 말을 쏟아붓고 있어.’

찰나의 순간, 태수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흐릿해졌다. 마치 카메라 렌즈가 줌을 다시 맞추는 것처럼, 그의 동공이 기이하게 수축했다가 확장되었다.

“…어?”

태수가 멈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들어 올렸던 손이 허공에서 갈 곳을 잃고 떨렸다.

“너… 너 방금 뭐라고 했어?”

태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수의 얼굴은 공포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이 미친 새끼가… 선생님한테 다 말할 거야!”

태수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복도에 있던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고, 이어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통증이 나를 덮쳤다.

“크윽…!”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시야가 암전되는 것처럼 흐릿해졌다. 능력을 사용한 대가였다. 내 생명력을 갉아먹는 듯한 끔찍한 반동. 나는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통쾌함은 없었다. 오직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내 몸을 갉아먹은 능력에 대한 공포만이 남았다.


다음 날, 교무실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선생님! 진짜라니까요? 한결이 저 녀석이 저한테 패드립을 쳤다니까요? 눈을 부라리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태수는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싸늘했다.

“태수야. 그 자리에 있던 반 아이들한테 다 물어봤어.”

“애들이 못 들은 거예요! 저 새끼가 작게 속삭였다고요!”

“민지랑 준호가 바로 옆에 있었어. 한결이는 숨이 차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고, 오히려 네가 한결이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던데?”

“아니, 그게 아니라…!”

태수는 환장하겠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나는 분명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악마였을 것이다. 그 기억은 너무나 선명해서, 그는 현실을 의심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책상 아래로 떨리는 손을 감췄다. 두려웠다. 태수가 미쳐서 날뛰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내 머릿속의 상상이 타인의 머릿속에서 ‘사실’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내 몸이 부서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
그 두 가지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두렵게 만들었다.

‘내 눈을 본 사람은… 내가 원하는 기억을 갖게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눈은 카메라가 아니었다. 내 눈은 편집기였다. 현실이라는 원본 필름을 잘라내고, 내가 원하는 장면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위험한 도구.

교무실을 나오며 태수와 마주쳤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약골인 나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복도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한 피부, 마른 체구. 그리고 그 속에 박힌 짙은 갈색 눈동자. 겉보기엔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평범한 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눈을 마주치는 순간, 누구든 내 세계의 인질이 된다는 것을.

이것은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될까, 아니면 나를 고립시키는 저주가 될까.
열여덟의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나의 세상은 그날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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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면접의 시선스물여섯. 대학 졸업장은 땄지만, 내 몸은 여전히 열여덟 그 시절에서 크게 자라지 못한 것 같았다.그랬다. 내 능력은 사람의 기억을 속일 수는 있어도, 시스템의 붕괴를 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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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댕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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