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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첫 출근의 불안

넥솔브의 아침은 전쟁터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바쁘게 사원증을 찍는 사람들. 그 활기차고 치열한 풍경 속에 나, 이한결이 서 있었다.

“신입 사원 이한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개발 2팀 사무실 한가운데서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내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몇몇 사람들이 흠칫하며 나를 쳐다봤다.

“아, 그래요. 저기 빈자리에 앉으면 돼요.”

박성우 팀장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면접 때의 그 날카로운 눈빛은 여전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내게 주어진 첫 업무는 ‘고객 데이터 정리’였다. 수천 행에 달하는 엑셀 파일을 열어 중복된 항목을 제거하고, 양식을 통일하는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나는 의욕적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면접 때 ‘효율’을 강조했던 만큼,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엑셀 함수를 쓰고, 매크로를 돌려 작업 속도를 높였다. 모니터 화면이 빠르게 바뀌었다.

하지만 의욕이 과했던 걸까.

오후 3시, 사무실에 나른한 공기가 감돌 때였다.

“어…?”

내 입에서 당혹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화면 속 데이터가 이상했다. 정렬 필터를 잘못 건드린 탓에, 고객 이름과 전화번호가 뒤죽박죽 섞여버린 것이다. 원본 파일은 이미 저장 버튼을 눌러 덮어씌워진 상태였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흉곽을 때렸다.

‘복구해야 해. 빨리.’

실행 취소(Ctrl+Z)를 연타했지만, 매크로가 실행된 이후라 되돌려지지 않았다. 백업 파일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고객 개인정보가 섞인다는 건, 회사 신뢰도에 치명적인 문제였다. 입사 첫날부터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그때, 박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한결 씨, 아까 시킨 거 다 됐나? 잠깐 확인 좀 합시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 박동 소리도 커졌다. 들키면 끝이다. 수습 기간도 못 채우고 잘릴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박 팀장의 그 경멸 어린 눈빛을 다시 받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고개를 돌려 박 팀장을 바라봤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내 안의 악마가 속삭였다.

‘눈을 써.’

지금 능력을 쓰면 모든 걸 덮을 수 있다. 박 팀장에게 ‘데이터는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는 기억을 심으면 된다. 아니면, ‘파일이 깨진 건 서버 오류 때문이었다’고 믿게 만들 수도 있다.

내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익숙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박 팀장이 내 책상 앞에 멈춰 섰다.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뭐 문제 있어요?”

박 팀장이 의아한 듯 물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1초만 더 응시하면 된다. 그러면 이 위기는 없던 일이 된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했잖아.’

면접장을 나오며 했던 다짐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시선을 끊어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데이터를… 섞어버렸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박 팀장의 한숨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비켜봐요.”

그때, 내 옆자리에서 누군가 불쑥 나타나 키보드를 낚아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대리, ‘윤서아’였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내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렸다.

“서아 대리, 무슨 일이야?”

박 팀장이 묻자, 윤 대리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신입이 정렬 실수를 좀 했네요. 근데 이거 공용 서버에 자동 백업되는 폴더잖아요. 10분 전 버전으로 롤백하면 돼요.”

그녀의 손놀림 몇 번에 화면이 깜빡이더니, 뒤죽박죽이었던 데이터가 거짓말처럼 원상 복구되었다.

“자, 됐죠? 다음부터는 로컬에 사본 만들고 작업해요.”

윤 대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박 팀장은 혀를 쯧 찼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모르면 물어보고 해요. 사고 치고 멍하니 있지 말고. 윤 대리, 신입 좀 잘 봐줘.”

“네, 알겠습니다.”

박 팀장이 돌아가고, 나는 풀린 다리를 주체하지 못해 의자에 깊숙이 파묻혔다. 안도감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능력을 쓰지 않아도 해결될 일이었다. 하마터면 별것 아닌 실수 때문에 팀장의 기억을 조작할 뻔했다.

“감사합니다, 대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윤 대리가 피식 웃으며 캔커피 하나를 내 책상에 툭 올려놓았다.

“처음엔 다 그래요. 쫄지 마요.”

차가운 캔커피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혼자서 모든 걸 통제하고 조작해야만 안전하다고 믿었던 내 세계에, ‘도움’이라는 낯선 단어가 들어온 순간이었다.

나는 커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능력보다, 누군가의 손길이 더 따뜻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늘 처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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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001: 내 눈을 보면 안 돼 - 제4화. 점심시간의 갈등

제4화. 점심시간의 갈등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유일한 해방구라지만, 신입 사원인 내게는 업무의 연장선일 뿐이었다.“한결 씨는 메뉴 뭐 먹을래요?”“아, 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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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댕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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