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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면접의 시선
스물여섯. 대학 졸업장은 땄지만, 내 몸은 여전히 열여덟 그 시절에서 크게 자라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랬다. 내 능력은 사람의 기억을 속일 수는 있어도, 시스템의 붕괴를 막지는 못했다.
대학 졸업 후 인턴으로 일했던 스타트업 '데이터웨이브'가 그랬다. 서버가 터져나가고, 대표가 울부짖고, 모두가 패닉에 빠졌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공포를 잠시 지워줄 수는 있었지만, 500 에러로 도배된 모니터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회사는 망했다. 텅 빈 사무실에서 짐을 싸서 나오던 날,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세상을 지탱하는 건 마법 같은 초능력이 아니라, 견고한 코드 한 줄이라는 것을.
그 트라우마가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
다시는 무력하게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
정장은 헐거웠고, 넥타이는 목을 조르는 올가미처럼 느껴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창백했다. 누가 봐도 ‘신입 사원의 패기’와는 거리가 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환자처럼 보였다.
“후우….”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넥솔브(Nexolve) 본사 로비에 들어섰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IT 솔루션 기업. 데이터 분석과 QA(품질 보증) 직무에 지원한 나는 서류 전형을 간신히 통과하고 최종 면접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대기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옆자리에 앉은 지원자들은 중얼중얼 예상 답변을 외우거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나는 마른 손바닥에 배어 나오는 식은땀을 바지에 닦아냈다.
“이한결 씨, 들어오세요.”
호명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긴장 때문인지, 선천적인 부정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면접관은 총 세 명이었다. 가운데 앉은 중년의 남자는 인사팀장인 듯했고, 양옆에는 실무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오른쪽 끝에 앉은,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내 이력서를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한결 씨.”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명패에는 ‘개발팀장 박성우’라고 적혀 있었다.
“네, 면접관님.”
“포트폴리오는 나쁘지 않네요. 데이터 분석 자격증도 있고, 꼼꼼한 성격이라는 것도 알겠고. 그런데….”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훑어봤다. 마치 불량품을 검수하는 듯한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체력이 버텨주겠어요? 우리 회사는 야근도 많고, 프로젝트 마감 때는 며칠씩 밤새우는 일도 허다합니다. 이력서 보니까 병역도 면제던데. 솔직히 말해서, 들어와서 짐만 되는 거 아닙니까?”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면전에서 ‘짐’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나는 준비했던 답변을 꺼냈다.
“체력적인 부분은 꾸준한 관리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체력보다는 효율적인 시간 관리와 집중력으로 승부하는 편입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시네.”
박 팀장이 내 말을 뚝 끊었다. 그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효율? 집중력? 다 체력이 있어야 나오는 겁니다. 딱 보니까 멘탈도 약해 보이는데. 서버 터지고 고객사에서 전화 빗발치면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거 아니에요?”
옆에 있던 인사팀장이 난처한 듯 헛기침을 했지만, 박 팀장은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이한결 씨 같은 스타일 안 좋아합니다. 팀 분위기 처지게 만들 관상이야. 아픈 사람 배려해주느라 다른 팀원들이 고생하는 꼴, 제가 제일 싫어하거든요.”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참아야 해. 여기서 화내면 끝이야.’
내 침묵을 굴복으로 해석했는지,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결정타를 날리려는 듯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좋습니다. 그럼 기술 질문 하나 하죠. 만약 대규모 프로모션 중에 메인 서버가 터졌습니다. 개발팀은 패닉에 빠졌고, 원인 파악도 안 돼요. QA 담당자인 당신은 뭘 할 겁니까? 그냥 버그 리포트 쓰고 구경만 할 건가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서버가 터졌다.’
그 단어가 내 귓속에서 뇌관처럼 터졌다. 눈앞에 3년 전, ‘데이터웨이브’의 마지막 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붉은색 에러 메시지로 도배된 모니터. 대표의 울음 섞인 고함. 그리고 구석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회사가 망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던 무력한 나.
그때의 공포가 심장을 다시 옥죄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거의 외치듯이 대답하기 시작했다.
“구경하지 않습니다. 아니, 절대로 구경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는 그 끔찍한 상황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절박함이었다.
“QA는 버그를 찾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시스템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레이더’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Nginx 접근 로그부터 확인할 겁니다. tail과 awk 명령어로 실시간으로 어떤 요청에서 500 에러가 터지는지 패턴을 분석하고, netstat으로 비정상적인 연결이 폭주하는 포트가 있는지 확인할 겁니다. 개발팀이 코드의 논리를 볼 때, 저는 데이터의 흐름과 시스템의 비명을 들을 겁니다. 원인 파악이 늦어지면, 일단 문제가 되는 API만이라도 임시로 차단해서 전체 시스템이 죽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소리칠 겁니다. 회사가 망하는 것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핵심 기능이라도 살리는 게 먼저니까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면접이라는 사실도 잊었다. 내 눈앞에는 박 팀장이 아니라, 3년 전의 그 무력했던 내가 앉아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가운데 앉아 있던 인사팀장과 다른 면접관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병약한 겉모습과, 방금 내가 쏟아낸 절박한 외침 사이의 간극에 압도당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박 팀장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비웃음을 머금었다.
“말은 번지르르하네. 실전에서도 그래야 할 텐데.”
그 한마디가 내 마지막 이성의 끈을 끊어버렸다. 실력으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으로 증명했는데도, 결국 돌아오는 건 ‘어차피 너는 안 될 거야’라는 낙인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박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익숙한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8년 전, 교실 뒤편에서 느꼈던 그 차갑고 묵직한 것이 꿈틀거렸다.
‘하지 마. 쓰면 안 돼.’
이성이 경고했다. 하지만 본능은 이미 시신경을 개방하고 있었다. 나는 박 팀장의 눈동자 깊은 곳을 응시했다.
‘당신은 지금 무례했어. 그리고 내 눈빛을 보고 깨닫는 거야. 내가 약해 빠진 환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침착하고 강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의지가 허공을 가르고 그의 망막에 꽂혔다. 박 팀장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비웃음이 걸려 있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갔다.
“…어?”
박 팀장이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는 마치 방금 자다 깬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다시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경멸이 아닌, 당혹감과 알 수 없는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제가… 방금 무슨 말을….”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헛기침을 했다.
“아, 흠. 미안합니다. 제가 말이 좀 심했군요. 이한결 씨 눈빛이… 생각보다 살아있네요. 네, 아주… 강렬합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옆에 있던 다른 면접관들도 놀란 눈치였지만, 박 팀장의 태도 변화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질문 계속하겠습니다. 만약 입사하게 된다면….”
면접은 그 뒤로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박 팀장은 더 이상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면접장을 빠져나오는 내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가 아니었다. 능력을 사용한 대가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시야가 살짝 흐릿했다.
일주일 뒤, 합격 문자가 도착했다.
[넥솔브]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화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복잡했다. 기쁨보다는 찝찝함이 앞섰다.
내가 실력으로 붙은 걸까? 아니면 그 순간 박 팀장의 기억을 조작했기 때문에 붙은 걸까?
만약 능력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떨어졌을까.
나는 휴대폰 화면을 끄고 검은 화면에 비친 내 눈을 바라봤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회사에서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눈을 쓰지 않겠다. 나는 괴물이 아니라, 유능한 사원 ‘이한결’로 인정받고 싶으니까.
그것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내가 한 첫 번째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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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001: 내 눈을 보면 안 돼 - 제3화. 첫 출근의 불안
제3화. 첫 출근의 불안넥솔브의 아침은 전쟁터였다.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바쁘게 사원증을 찍는 사람들. 그 활기차고 치열한 풍경 속에 나, 이한결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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